Ordinary Life

돌배주

2012. 11. 17. 19:37

 

추석 연휴 때 시골에 내려가지 못해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딸아이를 데리고 뒤늦게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동네 뒷산에 돌배나무가 있다는 아버지의 귀띔에 카메라와 자루를 챙겨 산으로 향했다.

다행히 헤매지 않고 계곡 옆에 있는 키 큰 돌배나무를 찾았다.

인적이 드물고 꽤 깊은 산 속인데 이곳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낮은 나뭇가지에는 몇 개 남아 있지 않고 나무 꼭대기 높은 가지에만 돌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힘들게 산에 올라온 것이 억울해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에 올라 손을 뻗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자포자기한 맘으로 나무에 매달려 마구 흔들었더니 돌배가 우수수 떨어졌다. 올~~레~~ ><

떨어진 돌배를 부지런히 자루에 주워담은 후 뿌듯한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와 아내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몇 년 전 지방 출장 가서 지인이 소개해 준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식당 안은 직접 담근 술로 가득했는데 대부분 약초로 담근 술이었다.

말벌집 채로 술을 담아 놓은 것도 보였는데 말벌도 산채로 같이 넣었는지 술 속에 벌이 가득했다.

사장님은 그중 하나를 꺼내 술잔에 따르더니 마셔보라고 했다.

큰 기대 안 하고 한잔 들이켰는데 생각과는 달리 맛과 향이 달콤하면서 부드럽게 몸 안으로 녹아들더니 은근한 취기가 올라왔다.

알고 보니 그 술이 돌배주였다.

 

그때의 술맛을 잊지 못해 기회가 되면 직접 담아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번 시골 길에 돌배를 구할 수 있어 직접 돌배주를 담아 보았다.

술 담는 용기는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유리병을 사용했는데 오래된 옹기항아리에 담으면 좋다고 한다.

이번에 담근 술이 맛있으면 내년에는 옹기에 담아볼 생각이다.

과일주는 보통 도수가 30도 이상의 술을 사용해야 맛과 향이 잘 우러나온다고 하는데 너무 독할 것 같아 25도의 술을 사용했고 술의 양은 돌배보다 약간 많게 부었다. 너무 많이 부으면 향긋한 돌배 향을 느낄 수 없으므로 비율 조절을 중요하다. 밥할 때 비율이 적당하다고 한다.

설탕을 같이 넣으면 좋다고 하는데 일반 과일주는 머리가 아프지만, 돌배는 괜찮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설탕은 넣지 않았다.

숙성기간은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면 달콤한 향의 돌배주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이젠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